운엄집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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>문화유산>운엄집(雲广集)

운엄집(雲广集)은 17세 선조 휘 광벽(光璧 ; 1728∼1791), 운엄공의 시문집입니다.
운엄공의 자는 공헌(公獻), 호는 이우정(二友亭)이신데, 1909년(순종 3)에 그의 운엄공의 증손이신 헌식(憲植), 준식(駿植) 선조와 현손이신 병준(炳俊) 선조께서 운엄공께서 남기신 글을 모아서 간행하였으며 일명 '운엄선생문집(雲广先生文集)'이라고도 하며 4권 2책. 목활자본으로 권1에 시 226수, 권2에 소(疏) 5편, 사장(辭狀) 3편, 서(書) 9편, 권3에 잡저 9편, 기(記) 5편, 지발(識跋) 3편, 제문 6편, 권4에 묘갈·묘지 7편, 행장 2편, 부록으로 사제문(賜祭文)·행장·묘갈명·묘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문집 중 시는 전통적인 물성관(物性觀)을 그대로 견지하면서 쓴 영물시와 산수벽(山水癖)을 그대로 드러낸 술회시가 많으며 간결하고 전아하며 화평한 풍격을 띠고 있습니다. 이러한 산수벽과 함께 유교의 윤리·덕목, 특히 효우는 공의 시문을 지배하는 기저의식으로 작용하였습니다.

소(疏), 사장(辭狀), 서(書)는 대부분 공 자신의 병구완과 연로한 홀어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벼슬에서 물러나려는 진솔한 심정을 드러낸 글입니다. 잡저 중 '명륜당절목소지(明倫堂節目小識)'에서는 효제(孝悌), '여학재절목속지(與學齋節目續識)'와 '하교유첩(下校儒帖)'에서는 학문의 부흥, '향사당절목소지(鄕射堂節目小識)'에서는 사림의 책임을 강조하였습니다. 기(記) 중 '삼치당(三治堂)'에서는 조상, 자손, 형제를 모시고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서술한 글이고. 제문 중 '대산이선생문(大山李先生文)'은 이상정(李象靖)에 대한 제문으로 저자가 이황의 학통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글입니다. 이러한 학문적 입장에 섰기 때문에 거경(居敬), 궁리(窮理)의 철학적 실천이 많이 표명되어 있습니다.

운엄공께선 1759(영조 35)년 문과에 급제, 가주서(假注書)로 입시하셔서 시강원설서(侍講院說書)가 되셨으나 공께서 가르치셨던 장헌세자(莊獻世子;일명 사도제자)가 뒤주에 갇혀서 돌아 가시게 되자 벼슬을 버리시고 낙향하셔서 전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시다가 장헌세자의 아들이 왕위(정조)에 오른 후 장령에 제수된 후 돈령부 도정, 공조참의를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러셨으며, 신해년(1791년, 정조 15년)에 승정원 부승지에 제수 되셨으나 건강상 고향에 머물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으셨으며 같은 해 5월 18일에 돌아 가셨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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